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메아리가 없는 숲0437 2018. 10. 26. 19:34
누나에게 낯선 남자가 따라붙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두 달 전의 일이다. 처음 혜원은 그를 단순한 '어린애', '귀찮게 따라다니는 놈', '짜증 나는 바보' 등으로 불렀다. 양미간 사이를 정확히 반으로 나눠 가른 주름은 한동안 귀가하는 혜원의 얼굴에 착실히 붙어 떨어질 줄 몰랐으므로 그때 누나는 그를 어떤 대수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처치 곤란한 골칫덩어리쯤으로 생각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. 그러나 두 달이 지나고 마침내 혜원의 입에서 '스토커'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, 나는 그토록 충실했던 야간 자습도 뒤로 미루고 한참 동안 집 앞을 지키고 서서 혜원과 그가 나란히 이곳을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. 누나의 스―토―커. 고양된 표정으로 주먹을 감았다 풀며 그 외관을 상상한다. 손이 두텁거나 몸집이 집채만 하거나 빈 공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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활주로를 달리며 preview0437 2018. 10. 1. 04:52
… 병실 안에 있는 것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특유의 새하얀과 함께 멎어 있었다. 폐의 일부를 도려내고 누워 있는 남편과 그를 지켜보는 아내의 얼굴. 창가로 스며들다 간 젊음. 그걸 깨부수는 모든 종류는 이단이라 여겼다. 단 한 사람만 제외하면. 호석은 빳빳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몸을 침대 위에 고정시킨 채 매일 밤마다 귓속의 감각기관을 운행했다. 혼자서라도 멎지 않기 위해서였다. 활기를 갉아먹으려는 수마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 제 새까만 색을 풀고, 눈꺼풀을 끌어내렸다. 생각을 멈추고 정신을 아득하게 하고 마침내 나를 끝내려는 시험 같았다. 똑 딱 똑 딱.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시계가 내달린다. 긴 다리와 짧은 다리를 번갈아가며 똑 딱 똑 딱, 이곳에서 유일하게 멎지 않은 것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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메아리가 없는 숲 preview0437 2018. 1. 20. 03:00
누나에게 낯선 남자가 따라붙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두 달 전의 일이다. 처음 혜원은 그를 단순한 '어린애', '귀찮게 따라다니는 놈', '짜증 나는 바보' 등으로 불렀다. 양미간 사이를 정확히 반으로 나눠 가른 주름은 한동안 귀가하는 혜원의 얼굴에 착실히 붙어 떨어질 줄 몰랐으므로 그때 누나는 그를 어떤 대수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처치 곤란한 골칫덩어리쯤으로 생각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. 그러나 두 달이 지나고 마침내 혜원의 입에서 '스토커'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, 나는 그토록 충실했던 야간 자습도 뒤로 미루고 한참 동안 집 앞을 지키고 서서 혜원과 그가 나란히 이곳을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. 누나의 스―토―커. 고양된 표정으로 주먹을 감았다 풀며 그 외관을 상상한다. 손이 두텁거나 몸집이 집채만 하거나 빈 공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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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방인 preview0437 2018. 1. 20. 02:58
…… 옆집과는 서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넘나들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까웠으나 그곳에서 사람들은 낮이고 밤이고 철저한 혼자였다. 정국 역시 이웃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. 언젠가 불현듯 나타나서 스티로폼 상자 수십 개를 나르고 떠난 장정들을 봤던 게 전부였다. 계절감을 너무 상실한 나머지 보는 사람의 폐부마저 답답하게 조이던 새까만 양복들. 가파른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거리느라 이마와 목덜미에 땀을 한움큼 묻히고 있었다. 그때가 아마 폭염 주의보가 내렸던 날이었나. 무더위에 눈을 뜨자마자 헐렁한 반팔, 반바지 차림으로 나가서 달궈진 바닥에 물을 뿌렸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맞는 것 같았다. 어쨌든 그렇게 등장한 스티로폼 박스들은 옥탑의 가장자리를 따라 가지런히 정렬되었다. 바닥까지 토실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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