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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방인 preview

danim 2018. 1. 20. 02:58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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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옆집과는 서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넘나들 수 있을 만큼 거리가 가까웠으나 그곳에서 사람들은 낮이고 밤이고 철저한 혼자였다. 정국 역시 이웃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. 언젠가 불현듯 나타나서 스티로폼 상자 수십 개를 나르고 떠난 장정들을 봤던 게 전부였다. 계절감을 너무 상실한 나머지 보는 사람의 폐부마저 답답하게 조이던 새까만 양복들. 가파른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거리느라 이마와 목덜미에 땀을 한움큼 묻히고 있었다. 그때가 아마 폭염 주의보가 내렸던 날이었나. 무더위에 눈을 뜨자마자 헐렁한 반팔, 반바지 차림으로 나가서 달궈진 바닥에 물을 뿌렸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맞는 것 같았다. 어쨌든 그렇게 등장한 스티로폼 박스들은 옥탑의 가장자리를 따라 가지런히 정렬되었다. 바닥까지 토실하게 채워진 흙을 보아하니 아마 그 속에 방울토마토나 상추 따위를 깨나심은 모양이었다. 요즘 시대에도 이런 구식 낭만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…. 정국은 문득 이 인테리어를 설계한 옥탑의 주인이 누구인지 몹시 궁금해졌다. 그래서 평상에 진을 치고, 내심 그때 이것들을 나른 장정들 중 하나가 오지 않을까 예상했었는데 몇 주째 왔다 가는 사람은커녕 누구도 등장하질 않아서 아무래도 주인집 할머니가 적적한 마음에 가져다 놓은 것 같다는 쪽으로 결론을 지어야 했다.

 '진짜' 주인의 오발탄 같은 음성을 듣기 전까지는.

 

"가수야?"

 

 총성 같은 목소리가 귀를 꿰뚫는다. 평상에 한가로이 앉아 기타를 치고 있던 정국은 말 그대로 발작 같은 것을 일으키며 화드득 몸을 떨었다. 궁지에 몰린 초식동물처럼 둔하고 가여운 움직임이었다. 건너편의 상대는 먹잇감을 포식하기 위해 이미 모든 계략을 다 짜 놓은 맹수같이 여유롭다.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왜 냄새로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의문이었다. 정국은 여전히 궁핍하게 쪼그라든 어깨로 경계심이 그들먹거리는 눈알을 데로록 굴렸다. ……